보조자료

[Why] 뒷조사 해드립니다

_______! 2010. 5. 15. 12:45

[Why] 뒷조사 해드립니다

일러스트=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불륜 미행·신상정보·청부폭력 전문

●구청 공무원 다수 매수 ●경력 20년

●주민등록 정보 30만원, 납치·협박 300만원부터

●주의: 불법·범죄행위 다반사


서울경찰청 형사과는 구청 공무원과 신용정보회사 직원 등과 결탁해 개인정보를 빼돌린 심부름센터 대표 최모(58)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조선닷컴 5월 7일

심부름센터는 '돈을 받고 잔심부름을 해주는 곳'이다. 그런 심부름센터가 요즘은 '해결사'로 통한다. 궂은 일을 핑계로 미행·도청·정보 유출·청부 폭력·마약 배달 등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다니는 게 심부름센터다.

경찰에 적발된 심부름센터 대표 4명 중 최모(58)씨는 업계 경력 20년이다. 최근 2년간 의뢰인에게서 본인 계좌로 입금받은 돈만 10억원이 넘는다. 한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최씨의 심부름센터가 제일 먼저 떴다. 일을 잘해서 첫 번째로 등장한 게 아니다. 광고비로 한 달 2000만~3000만원을 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최씨의 주된 업무는 주민등록 담당 공무원을 매수하는 것이었다.

사람 찾고 뒷조사하는 의뢰가 많다 보니 주소지 정보를 빼주는 공무원이야말로 심부름센터의 최고 '정보원'이자 '사원'이었다.

최씨는 도봉구청 공무원 정모씨에게 매달 50만~70만원을 주고 3년간 수백명의 주민 정보를 빼냈다. 노원구청 공무원 윤모씨도 건당 1만원을 받고 다른 업체에 주민 정보를 팔다가 적발됐다.

경찰은 "공무원이 주민 정보에 접근하면 로그인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한 자체 감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정보를 빼돌릴 수 있었다"고 했다.

질병과 재산 정보를 보유한 건강보험공단, 실제 주소지 정보를 갖고 있는 홈쇼핑사나 택배사, 휴대전화 가입자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통신사 콜센터 직원도 심부름센터가 매수하려는 주요 정보원이다. 채권 추심을 하는 신용정보사 직원들에게 돈을 주고 금융 정보를 받기도 한다. 결국 심부름센터의 능력은 이런 정보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직원들 풀어 발품 팔기보다는 매수한 정보원에게 전화 한 통화로 얻는 정보량이 훨씬 많은 것이다. 심부름센터는 위치추적기와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소재 파악이나 미행에 나선다.

렌터카 회사에서 차량 위치 파악용으로 이용하는 위치추적기를 구입해 의뢰인이 추적을 요구한 차량에 몰래 설치한다. 또 '친구 찾기 서비스'에 등록한 두 대의 전화기 중 한 대를 추적할 차량에 설치하기도 한다.

탤런트 전지현 사건 경우처럼 쌍둥이 휴대폰을 만들어 남의 문자메시지를 무작위로 들여다보는 불법행위도 돈만 주면 마다하지 않는다. 결혼식장에서 부모 역할을 맡기도 하며, 어떨 땐 애인이 돼 스토커를 쫓아버리는 일도 한다.

재작년 명문대 출신 대학 연구원이 부인과 아들 등 가족을 살해해달라고 찾아간 곳도 심부름센터였다. 그렇다면 얼마를 받고 이런 일을 해주는 것일까.

휴대전화 가입자 정보를 알아봐 주는 데는 20만~30만원, 주민등록 초본 정보는 30만원, 가족 상황을 모두 체크할 수 있는 제적 등본은 50만~100만원을 받는다.

미행과 장비를 이용한 뒷조사 가격은 일주일당 200만원쯤 되고 협박이나 납치 등 청부폭력은 최소 300만원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가격이 똑같이 적용되진 않는다.

돈 많거나 어수룩한 사람에겐 많이 받고 가난하거나 깐깐한 의뢰인에겐 적게 받는다. 한 60대 병원장은 불륜이 의심되는 부인의 문자메시지를 도청하고 미행을 의뢰하는 데 2000만원을 줬다.

요구한 정보를 단번에 파악해놓고도 찔끔찔끔 알려주면서 여러 번에 걸쳐 돈을 받아내는 것도 단골 수법이다. 불륜 덕에 돈 버는 곳이 심부름센터다. 전체 의뢰 건수의 절반이 외도와 관련돼 있다.

의뢰인 중엔 남편을 의심한 아내가 가장 많고, 아내를 의심한 남편이 그다음이라고 한다. 남편들이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할 땐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심부름센터가 아내의 불륜을 포착해 여자의 몸을 유린한 뒤 다시 거액을 뜯어내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착수금 받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려 '뒷돈'까지 챙기는 업자도 있다.

심부름센터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손님을 끌어들인다. '지구 끝까지 미행해드립니다' '고민 끝 행복 시작' 등 각종 홈페이지 문구로 손님을 유혹한다.

전국에 지사가 있고 전화번호도 여러 개인 것처럼 사세(社勢)를 부풀리는 업체들이 많지만 기껏해야 직원 1~2명이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손 달리면 다른 업체에 '하청'을 주면 그만이다.

가끔 '정부 인증업체' '공인 업체'라는 문구가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데 이는 거짓말이다. 심부름센터는 세무서에 사업 신고만 하면 누구든 영업할 수 있는 자유업으로 정부 인증이란 게 필요 없을 뿐 아니라 공인해줄 기관도 없다. 경찰 관계자는 "어떤 업체는 '자문 변호사'가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냥 '아는 변호사'가 있다는 말로 이해하라"고 했다. 세금 내기 싫어 아예 사업자 신고도 하지 않은 무등록 업체가 수두룩하다. 심부름센터는 서울 300여곳을 비롯해 전국에 2000~3000개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심부름센터가 하는 미행, 도청, 주민정보 유출 등은 모두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의뢰인도 함께 처벌받는다"고 했다.

심부름센터의 난립과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민간조사업법(일명 탐정법)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 등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 법이 언제 통과할지 장담하긴 어렵다.

[강훈 기자 nuku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