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작법.4>양장시조, 옴니버스시조, 동시조 | 時調작법(1)
2004/06/04
임정일(skyman63) http://cafe.naver.com/ipoem/1316
라. 양장시조의 형태
시조의 형식 가운데 개화기에 이르러 출현한
시형으로서 초■중장 가운데 한 장이 생략된
형식이다. 양장시조, 혹은 2장시조라고도 하는 이 시형은 말 그대로 두 장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시조를 말한다. 우리 시가문학은 개화기에 이르러 많은 변형이 나타났으며 양장시조도 단시조의
축약적 변형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도 의구하고 물도 의구하건만
엇지타 우리 강토는 이
디경이 되얏노
- "경세목탁(警世木鐸)"
섬진강
놀러온 돌 은빛 비늘 반짝이고
드레스 입은 물고기 시리도록 푸르다.
- 윤금초의 "빗살무늬 바람" 첫째 수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 기쁜 옛 얘기 차곡차곡 접어둔 곳.
추억의 빗장 열면 눈앞에 떠오르는
수수한 반다지 표정,
삶의 숨결 스며 있네.
- 김혜선의 "반다지"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김혜선의 "반다지"는 2수로 구성되어 있는 2장시조다.
"아버지 기쁜 옛 얘기 접어둔 곳"이나 "수수한 반다지 표정"에서 한국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움 꼬옥 묶은 열 손가락 풀어헤치니
丹心이 새겨져 있네 달쪽 같은 손톱에■.
- 이효정의 "봉선화
물들이기"
도시락 챙겨 주며 감싸쥐던 그날 그 온기
까슬한 손잔등 위에 일렁이는 잔물결.
하교길 마중 나와 웃음 심던 눈매 가엔
세월이 쟁기질하여 고랑 지어 놓았네.
- 우순조의 "어머니"
우순조의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감동의 언어로 다가올 수 있는 사모곡이다. 특히
"세월이 쟁기질하여 고랑 지어 놓았네"라고 토로한 대목이 인상적인 양장시조이다.
마.
옴니버스시조의 형태
"옴니버스시조"는 한 편의 연작시조(連作時調) 속에 앞에서 말한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
■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혼합(混合) 연형시조(連形時調) 형태를 말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전제 아래 1970년대 이후
시도된 새로운 시조 형태이다.
윤금초의 장편시조 "청맹과니 노래"가 그 시발점이며, 근래 패기에 찬 젊은 시조시인들이
다투어 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대 사회의 복잡다기(複雜多技)한 문명의 흐름을 포착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에 적응해 가는 인간들의 사고와 심리의 중층구조(重層構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 영역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286시대, 386시대는 이미 과거 역사로 기록되고 있으므로,
이제 "새로운 세기에 부응한 새로운 표현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시나 소설을 구획 짓는 장르
개념이 차츰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장편서사시조 같은 스케일이 웅장하고 이야기가 담긴
시조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주(變奏)"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옴니버스시조"를 활발하게 창작, 시조문학의 지평을 한껏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근자에 현대 시조의 "누벨 바그 운동(새 물결)"에 참여하고 있는 몇몇 중진과
신인들이
"옴니버스시조"를 대담하게 시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1
돌꽃 피는 것 보러
돌곶이 마을 갔었다.
길은 굽이돌면
또 한 굽이 숨어들고 산은 올라서면 또 첩첩 산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 돌아서려
했을 때 눈 앞에 나타난 가랑잎 같은 마을들, 무엇이 이 먼 곳까지 사람들을 불러냈나. 살며시
내려가 보니 무덤처럼 고요했다. 가끔 바람이 옥수수 붉은 수염을 흔들 뿐,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람의 자취 묘연했다.
여러 날 헤매이다가
텅 빈집처럼 허물어졌다.
2
화르르 타오르는 내 몸엔 열꽃이 돋고
세상은 천길 쑥구렁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누군가 눈 좀 뜨라고
내 이마를 짚었다.
나, 그 서늘함에 화들짝 깨어났다
눈 뜬 돌들이 지천으로 가득했다
온전히 제 안을 향한 환한 꽃밭이었다.
- 송광룡의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그리움도 한
시름도 潑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꽃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河伯의 딸 버들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디흰 謫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 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왕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오고 막다른 벼랑에 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채찍 활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 천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 소리
천둥 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깎지 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듯 건너 졸본천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四神圖 포치하는, 광활한 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 윤금초의 "주몽의 하늘"
1.
코카콜라 뚜껑이 버려진 잔디밭에
푸르름은 그들의 작업을 봄이라
부르며 땅 깊이 산발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있었다.
그들의 생명위로 쓰레기가 버려져도 열심히 땅을 일구고 뿌리내릴 양분을 채워 주었다.
돋아나는 새순에 풀벌레 스며들면서 푸르름의 목소리는 한 뼘이나 커졌지만 빌딩숲을 이고 있는
숨가쁜 흙에서는 아늑한 숲의 향내가 새나올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푸르름의 어깨 위로 낯설고
고운 아이의 손길이 내려와 버려진 장난감 같은 코카콜라 뚜껑을, 진달래 꽃잎에 미끄러진 햇빛을
줍고 있었다.
겨울의 빨간 귓볼에 피가 돌고 있었다.
2.
끊임없이
표정 바꾸는 자화상을 그리며
봄아. 너는 투명한 손이다 아이처럼
흩어진 햇빛 조각을 이파리에 입히는.
- 현상언의 "봄, 유년,
코카콜라 뚜껑"
뚝뚝 목이 지는 화엄사 동백을 만나
일자리 작파하고 유랑하는 친구의 말씀
지리산 반야봉 너머 환한
세상 있것다
천왕봉 상상봉에
매어놓은 <바람집 한
채>
바람을 부르면 슬픈 가락이 되고 구름 몰려오면 벼락치는 노한 소나기로 우르릉 쾅쾅,
섬진강 은어떼 뛰듯 철없이 튀어올라 평사리 무논바닥 잡풀 자라듯 그렇게 한 시절 살아보려
했는데 절뚝이며 절뚝이며 술잔 비우네
동백은 생살로 목이 뒹굴고
어둠은 말없는 산을 감춘다
- 김영재의 "화엄동백"
물새떼 날갯짓에는 하늘색
묻어난다
중생대 큰고니도, 갈색 부리 익룡들도
후루룩 수면
박차고 날자날자 날자꾸나.
장막 걷듯 펼쳐지는 광막한 저 백악기 공원.
물벼룩 물장구치는 안개 자욱한 호숫가, 켜켜이 쌓아올린 색종이 뭉치 같은 시루떡 암석층
저만큼
둘러놓고 배꼽 다 들어낸 은빛 비늘 아기공룡 물기 흥건한 늪지 둑방길 내달릴 때 웃자란 억새풀
뒤척이고 뒤척이고■. 발목 붉은 물갈퀴새, 볏 붉은 익룡 화석도 잠든 세월 걷어내고 두 활개 훨훨
치는 비상의 채비한다.
1억년 떠돌던 시간, 거기 머문 자리에서.
한반도
호령하던 그 공룡 어디 갔는가.
지축 뒤흔드는 거대한 발걸음 소리
앞산도 들었다 놓듯 우짖어라, 불의 울음.
저물면서 더
붉게 타는 저녁놀, 놀빛 바다.
우툴두툴 철갑 두른 폭군 도마뱀 왕인가. 파충류도 아닌 것이, 도롱뇽도
아닌 것이, 초식성 입맛
다시며 발 구른다 세찬 파도 밀고 온다. 검은 색조 띤 진동층 지질 아스라한 그곳,
결 고운 화산재■달무리■해조음 뒤섞이고 뒤섞여서 잠보다 긴 꿈꾸는 화석이 되는 것을,
별로 뜬 불가사리도 규화목(硅化木) 튼실한 줄기도 잠보다 긴 꿈꾸는 화석이 되는 것을■.
깨어나라, 깨어나라. 발목 붉은 물갈퀴새, 볏 붉은 익룡 화석도 잠든 세월 걷어내고 이 강물
저 강물 다 휩쓸어 물보라 치듯 물보라 치듯, 하늘색
풀어내는 힘찬 저 날갯짓!
후루룩 수면 박차고 날자날자 날자꾸나.
- 윤금초의 "백악기 여행 - 우황리 공룡 발자국 화석에 관한 단상"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송광룡의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은 사설시조 한 수와 평시조 두 수로
마무리한 옴니버스시조다. 윤금초의 "주몽의 하늘"은 평시조+사설시조+사설시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현상언의 "봄, 유년, 코카콜라 뚜껑"은 사설시조 한 수와 평시조 한 수. 김영재의
"화엄동백"은 평시조 한 수와 사설시조 한 수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윤금초의 "백악기 여행"은
평시조+사설시조+평시조+사설시조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초장과 종장, 특히 시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장의 율격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옴니버스시조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걸맞는 "그릇"인
것이다.
평시조의 단조롭고 틀에 박힌 가락을 한 단계 뛰어 넘어 스케일이 웅장한 서사 구조(敍事 構造)의
시조를 시도할 수 있는 형식 장치인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평시조는, 대중가요의 트로트나 뽕짝조 리듬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사설시조나
옴니버스시조는, 랩이나 힙합조 리듬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바. 동시조의 형태
동시조는 평시조 형태 속에 동심(童心)을
담아내는 양식이다.
솟는 해가 풀어놓은
싱그런 황금
물감을
발가락에 듬뿍 찍어
붓질하는 갈매기들
나날이
너럭바위에다
새 아침을 그린다.
글자로 수놓인 듯한
곰실대는 발자국들.
갈매기 주인인
이 바다, 이 화폭에
오늘은
가창오리 한 떼가
덧칠을 하고 간다.
- 박경용의 "발자국■2"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감고도 찿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 정완영의 "엄마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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