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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조작법.9> 창작의 실제(시어의 선택, 표현)/ 윤금초

_______! 2006. 9. 15. 15:29

  <시조작법.9> 창작의 실제(시어의 선택, 표현) | 時調작법(1)  2004/06/04 22:06
  임정일(skyman63)   http://cafe.naver.com/ipoem/1311


   ■ 시어의 선택과 표현

    시조가 잘 써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까닭을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경우가

    될 것이다.
    ①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시적 대상)에 관한 관찰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경우 (시적 대상에 대한 사전 취재■구상■얼개 짜기가 미흡한 경우)
    ② 시적 대상을 표현함에 있어 거기에 적합한 말(詩語)을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적 대상이 결정되면 수시로 메모■入力■구성■詩語 조립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일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이 이루어지고 또 그에 적합한 말(言語)을

        찾을 수만 있다면 시조(문학) 쓰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 詩語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시어(詩語)란 과연 무엇인가? 사실 시어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들에서 언어를 취사선택해 갈고 닦아 쓰는 말이

    곧 "시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란 일상의 말과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상어(日常語)란 사전적 해석이 가능한, 단일한 의미를 지닌 말을 지칭한다.

    우리의 감정 및 정보를 지시적이며 실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단순한 의미의 낱말을

    무의식적이며 습관적인 어법(語法)에 따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일상어다.

    이와 반대로 시어란 비실용적이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말로서 하나의 낱말이 하나의

    문맥 속에서 다른 낱말들과 어떻게 관련되고 연결되는가에 따라 그 지시 대상과 의미의

    진폭이 서로 다른 정서를 낳게 되는 말이다.

    (복합적인 뉘앙스와 상징■압축■리듬감을 지닌 언어)

    그렇다면 시어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리 토속어(土俗語)에서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토속어라는 순수 우리말을 갈고 닦아서 시에 활용하는 것도 색다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예 / 는개(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바자니다(부질없이 가까운 거리를 왔다

    갔다 하다), 발싸심(무슨 일을 하고 싶어서 애를 쓰며 들먹거리는 짓), 각다분하다(일을 하여

    나가기에 몹시 힘들고 고되다), 넉장거리(네 활개를 쭉 펴고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 짓),

    톺아오르다(샅샅이 더듬어서 오르다), 바사기(똑똑하지 못한 사람), 미리내(은하수),

    자배기(질그릇의 일종), 애면글면(힘에 겨운 일을 해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모양)

    뜬금없이(느닷없이), 지노귀새남(鎭魂 굿), 질라래비 훨훨(어린 아이에게 새가 훨훨 날듯이

    팔을 흔들며 달려오라고 하는 소리) 등 조금만 신경 쓰면 아름답고 감칠맛 나는 우리 토속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묵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모국어를 순화■발전시키는 작업의 일환이다. 우리 토속어를 많이 발굴하여 시어로

    활용한 것이 문학인의 사명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는 토속어를 활용하여 직접 시조 작품을 창작해 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 문학 작품에 토속어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작가 및 작품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의 소설 "임꺽정(林巨正)". 벽초는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월북한 작가.
    최근에는 최명희의 "혼불",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禾斥] 등 우리 토속어를 맛깔스럽게

    구사한 작품들이 많다.

     이끼 낀 함성들이
     줄지어 묻혀 있다.

     마파람에 헐린 섬돌
     아픔 딛고 고개 드는,

     한 세월
     잊은 이야기
     성채 가득 움튼다. 

    - 김보현의 "동래산성" 

    김보현의 "동래산성"은 소재가 새롭다거나, 발상법이 신선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동래산성이라는 그 범상한 대상을 범상하지 않게 꿰뚫어본 작자의

    "예지의 눈"이 남다른 것이다. "동래산성"은 일상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시조의 행간 속에

    역사의식이 배어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툭 툭 빠른 저 붓놀림
     덧칠하는 가을 화판, 
     비늘 돋은 앞녘 강물
     온갖 형용사로 넘실대고
     극채색 감성 언어가
     꽃잎 되어 고개 드네.

     들쭉날쭉 달려오는
     산등성이 등에 업고
     변성기 수탉처럼
     활개치던 풀빛 아이들,
     세상사 이내 속으로
     속절없이 가고 있네.

     지난철 허장성세도 
     두어 장 갈잎 야사(野史)로 남고
     솔바람 카랑한 음성
     다비문을 읽는 걸까,
     우리네 골짜기 삶을
     산그늘이 덮고 있네. 

    - 윤금초의 "꽃의 변증법 / 2"


    * 지금은 사라져버린 고어(古語)를 다시 발굴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도

     모국어(母國語)를 사랑하는 시인의 사명 중 하나이다.

    예 / 가난살이(가난한 살림살이), 거시기, 그리메(그림자), 는실난실(성적 충동으로

    야릇하고도 잡스럽게 구는 모양), 드난살이(여자가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고용살이하는 생활),

    즈믄(千), 앵돌아지다, 외오(멀리 외따로), 건듯(문득, 잠깐), 애막(움집), 가비야온,

    애야로시(애오라지, 한갖, 또는 오직), 달하(달아) 등 토속어나 고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 보면 시어로 사용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어(死語)"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다.
    * 따라서 사자성어(四字成語) 등도 활용만 잘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예 / 염화미소(부처님의 미소), 허장성세(허세로만 떠벌림), 경천동지(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 등

    # 詩語의 질서화

    시조는 본질적으로 서정시다.
    서정시, 혹은 시조란 개인의 정서와 상상이 인상적인 리듬과 더불어 표현되는 짧은 시다.

    그 중에서도 시조는 순간적이며 절박하고도 긴장된 감정을 압축된 형태로 표출해내는

    정형시다. 순간적으로 긴장된 감정 상태를 압축된 형식 속에서 질서화(정형화)해 나가는

    구체적인 도구가 시어이며, 작자(시조시인)가 새롭게 발견한 사물의 의미를 예술적(서정적)

    세계로 형상화시켜 나가는 데는 다양한 표현법이 따르게 마련이다.

    여기서 비유나 생략법, 상징과 암시 등 각종의 수사법(修辭法)이 동원되고, 시조는 그 형식상의

    특성에 따라 격조와 리듬을 살린 언어의 음률적 구사와 함축된 의미의 간결한

    표현이 요구된다.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지 못해

     눈먼 하 세월에 절간 하나 지어 놓고

     구절초 구절초 같은 차 한 잔을 올립니다

    - 박기섭의 "구절초 詩篇"


    문학평론가 박영호는 박기섭의 "구절초 詩篇"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구절초 詩篇]에서 우리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이제는 저 깊은

    심연의 세계로 침몰시키려는 체념을 읽을 수 있다. 어느덧 계절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가을로 바뀌었다. 세월이 흐르면 그리움도 그렇게 퇴락할 줄 알았는데 억지로

    숨겨두었던 그리움이 의식의 수면 위로 샘처럼 솟구친다. 그리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가슴은 온통 젖어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제는 허상(虛像) 같은

    그대에게 그저 차 한 잔 올리는 일일뿐이다.

    시인에게 있어 그리움이란 "두어 평 꽃밭마저 가꾸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다 못간 적멸의

    길("和順 赤壁") 먼발치에서 떠돌게 하는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수심일 뿐이다.

    그리운 대상과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슬픔을 그린 작품이 어찌 위의 작품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위의 작품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을 하늘같은 청량함과 정갈함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부질없는 욕망을 덜어내려는 그리고 그리움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지려는

    그래서 그리움조차도 멀리서 맑은 시선으로 응시하려는 시인의 자세 때문이다.

    위의 작품이 연시(戀詩)는 평범함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는 통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움이란 정서를 구절초라는 대상이 지닌 이미지로 환치시키는 과정에서 한순간도 잃지

    않고 있는 긴장감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긴장감을 잃지 않는 언어가 곧 살아있는

    시어인 것이다.

    * 시어 선택 때 주의할 점
     상투적인 언어를 배제할 것 = 눈물, 울음, 낮달, 차라리, 시방, 아직도 등
     가급적 고답적인 언어를 피할 것 = 조국, 山河, 달빛, 구름, 돌담길, 신작로, 소쩍새,

     실솔(귀뚜라미), 진달래, 개나리 등

      한낮을 긴밤처럼 지나간 강에게로
      중상을 깊게 당한 육신을 납골시키고
      어떠한 동의도 없이 조용히 잊는다 

      오늘도, 아무도 알지 못한 일이라며
      무쇠처럼 고개 흔든 목화밭 흑인처럼
      메마른 잔등 긁어내는 허전한 문지방

      꽃처럼 떠돌다가 죽어버린 하늘은
      안 보이는 음지와 얽혀서 헤메이고
      당신의 길이 되어서 조용히 깨어난다

    - 무명씨의 "부활"

    인용한 작품 "부활"은 띄어쓰기■맞춤법을 무시하고(사실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작자

    자신이 몰라서 저지른 실수로 보임), 구문법(構文法)이 맞지 않아 피가 안 통하는 문장을

    이른바 시조라고 버젓이 발표하고 있다. 이런 "조잡한 글"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는

    시조문단 분위기도 반성의 계기가 와야 할 것이다.

    * 불필요한 외래어도 삼가 해야 한다. = 이벤트, 드라마, 알코올, 시네마, 드라이브 등 
      (라디오, 아이스크림 등 고착된 언어는 예외) 


    * 북한 말 / 아이스크림 = 얼음보숭이, 물수제비, 브래지어 = 가슴띠, 칼라 = 목달개,

      혹은 깃받이, 부츠 = 목달이구두, 마네킹 = 몸틀, 원피스 = 달린옷, 투피스 = 나뉨옷,

      도넛 = 가락지 빵, 카스텔라 = 설기과자, 시럽으로 된 약 = 단물약, 볼펜 = 돌돌붓,

      피스톤 = 나들개, 뉘앙스 = 뜻빛깔, 스크랩 = 오려붙이기, 로터리 = 도는 네거리,

      템버린 = 방울북 등

    여기서 잠깐 박목월 선생의 작품 한 편을 감상하고 넘어가자.

     시인이란 말은
     내 성명 위에 늘 붙는 관사
     이 낡은 모자를 쓰고
     나는 비오는 거리를 헤매었다.
     이것은 내 전신을 가리기에는
     어쭙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것
     허나, 인간이
     평생 마른 옷만 입을까부냐
     다만 두 발이 젖지 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 박목월의 "某日"

    * 셰익스피어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영국 시인 S 존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시란 이성(理性)의 조력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리와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시의 본질은 발견이다. 예기치 않는 것을 탄생시킴으로써 경이와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 시와 산문의 변별성

    그러면 이른바 "선택"된 시어의 배열은 어떻게 해야 할까. 동일한 단어일지라도

    그것의 배열에 따라 시도되고 산문도 된다. 물론 그 언어의 배열이라는 것도 그들 언어를

    배정처리(配定處理)하는 사람이 시정신(詩精神)의 소유자이냐, 산문정신(散文精神)의

    소유자이냐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책상 위에 산재해

    있다고 하자. 

    오랜, 城터 아래, 무너진, 세월을, 깎여온, 바위가, 風雪에, 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배열한다면 그것은 산문이 된다.
    <오랜 세월을 風雪에 깎여온 바위가 무너진 城터 아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무너진 城터 아래 오랜 세월을 
    風雪에 깎여온 바위가 있다.>(조지훈 "풀잎 단장" 일부)
    라고 언어를 배열하면 그것은 7■5조를 기본 바탕으로 한 시가 된다.
    <나는 여기 피비린 玉樓를 헐고 다사한 햇살에 익어 가는 초가삼간을 짓자.>

    라고 쓰면 산문이 되지만 같은 단어를 다음과 같이 자리만 바꿔 놓으면 시가 된다.

   <여기 피어린 玉樓를 헐고 다사한 햇살에 익어가는 초가삼간을 짓자.> 
   - 조지훈의 "흙을 만지며"에서

   <나>라는 단어 한 마디의 자리바꿈으로 산문이 일약 시가 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의 언어는 그 위치의 배정(언어의 조립, 혹은 언어의 자리매김)에 따라

    시가 되기도 하고 산문이 되기도 하며, 그 언어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작자 미상 옛 그림 다 자란 연잎 위를
     기름종개 물고 나는 물총새를 보았다
     인사동 좁은 골목이 먹물처럼 푸른 날

     일곱 문 반짜리 내 유년이 잠겨 있는
     그 여름 흰 똥 묻은 삐딱한 검정 말뚝
     물총새 붉은 발목이 단풍처럼 고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녹이 슨 갈대밭에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길 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온 물총새

    - 유재영의 "물총새에 관한 기억"

   유재영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물총새에 관한 기억"을 두고 신경림 선생은 이런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3장으로 된 이 시조에서 시의 배경은 각기 달라, 첫장은 옛 그림이요,

   둘째장은 유년의 기억, 셋째장은 텔레비전 화면이다. 그 속에서 물총새는 "다 자란 연잎 위를/

   기름종개 물고" 날고, 단풍처럼 고운 붉은 발목을 하고 "흰 똥 묻은 삐딱한 검정 말뚝"에 앉아

   있고, "길 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와서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첫째수와

   둘째수의 물총새는 다 같이 아름답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고, 셋째수의 물총새는 비참하다.

   결국 이 시에서 물총새를 문명의 발달이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전령사로 읽을 수도 있지만, 내 머리에서는 먹으로 그린 옛 그림 속의 물총새와 유년의

   기억 속에 천연색으로 살아 있을 물총새와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가는 물총새의

   선명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박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의 뛰어난 솜씨는 시조로 될 것

   같지 않은 내용까지 뛰어난 시조로 만들고 있다는 증좌로서, 다양한 시세계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그의 시의 주제는 다양하여, 흔히 시조작가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든가 시조가

   시대착오적으로 음풍농월에 시종하는 바람에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통념은

   그에 관한 한 맞지 않는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견딜 수 없는 병도 때론 서릿빛 단풍처럼
 
    아름다운 견딤, 그 찰나의 아름다움 

    사루어 더욱 빛나는 목숨들의 광채 

    - 박권숙의 "낙엽"

   박권숙의 시조는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말할 때조차 체념이나 감상(感傷), 자기 연민을

   드러  내지 않는다"고 언급한 심선옥은 "낙엽"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런 병도 "아름다운 견딤"으로 바꾸어내는 것에서, 고통과 절망을 삶의 힘으로

   견인(堅忍)해내는 시인의 정신력이 드러난다. 자신의 운명을 다스리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는 시조의

   정형적 형식을 통해 속 깊이 단련된다. 절제된 말과 꽉 짜인 운율을 전제하는 시조의 형식적 특성은

   주관적인 감상성(感傷性)이 끼여들 틈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정신적인 견딤과 단련을 돕는다"고

   평하고 있다.

   # 적확한 언어의 구사

    시조시는 고도의 생략 기법을 통해 절제된 언어 표현을 얻어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신선함을 전달해 줄 것이다.

    현대 시조는 가장 현대적이어야 한다. 문학 작품의 현대성이란 당대의 정서, 그 시대의 인간 삶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 구원의 예술이라는 사실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현대 시조는 현대적 감성이 자아올리는 새로운 서정세계를 요구하고 있다.
    처음 시조를 쓰는 사람들은 먼저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을 구사,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표현)

    하는 훈련을 쌓아야 할 것이며, 표현의 요체인 사생력(데생력)을 길러가야 할 것이다.

    필요 없이 의미(이미지)를 왜곡하거나 난해한 표현, 난삽한 어휘의 나열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표현의 적확성 일물일어(一物一語■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말은 단 한마디 뿐이다),

    주제의식의 선명성 치열한 시정신■소재의 참신성■신선한 언어감각)


     강가에 나가서니 잔물결이 문득 붉다.
     배 한 척 갈대 숲에서 아침잠을 깨는 시간.

     새들은 산 속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햇빛이 산길을 연 뒤 내 발 가에 앉는다.

    - 강민대의 "아침"

   강민대의 "아침"은 시조의 구성요건을 넉넉하게 갖추고 있는 2장 시조이다. 아침 해돋이와

   그 주변 풍물을 마치 영상미학을 추구하는 카메라처럼 기록하고 있다. 지나치게 멋(기교)을 부리는

   데 치우친 나머지 알맹이(내용)를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아침"은 그것을 능란하게 극복하고 있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 이우걸의 "팽이"


   이우걸의 "팽이"는 마흔 일곱자로 이루어진, 짧다고 보면 매우 짧은 단형시조지만 거기 담긴 내용은

   하해(河海)와 같아서 "얼치기 단시조"가 횡행하는 이 마당에 무릇 단형시조의 한 전범(典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팽이"에 대한 김홍섭의 해설을 들어 보자.

   "이 작품은 이우걸의 언어조율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한눈에 보여주며, 동시에 그가 꿈꾸는

   꿈의 실체와 의미를 얄미우리만치 깔끔하게, 그리고 단숨에 전달한다.
 「팽이」에서 "팽이"가 시인 자신이라면 "매"는 자아다. 팽이가 돌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이미 그것은

   팽이가 아니다. 자아의 채찍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꼿꼿이 몸을 세워 돌 때 비로소 팽이는

   고통스러운 자각 속에 무지개를 꿈꾸며 그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오해받을 소지도 있다.

   시인이 꿈꾸는 세계가 "무지개"라면 너무나 피상적이거나 유미주의적이라는. 그러나 나는 그같은

   의문을 경계한다. 이우걸의 무지개는 적어도 고통스럽게 자학하는 팽이의 증언으로서의 무지개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자기 구원의 메시지이며 공감하는 모든 자들의 구원의

   메시지다."
   우리는 "팽이"에서 불의에 맞서 항거■증언하는 시인의 "꼿꼿한 저항정신"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 주의사항
    주제를 산만하게 나열하지 말 것.
    시어를 조립식으로 난삽하게 배열하지 말 것(한 때 난해시와, 언어가 비비꼬인 듯한 이미지의

    왜곡현상이 자유시에 범람한 적이 있었으나 요즘은 그런 류의 작품은 도퇴되었음).
    남이 이미 표현했던 주제나 소재는 가급적 피할 것. 


     호박꽃도 꽃이냐고 어리석은 소리만
     신토불이 좋은줄은 어이하야 모르는고
     조상님네 애지중지 실겅위에 모셨다네

     영양가를 따지면서 다이어트 한다면서
     호박떡에 호박풀 때 구수한맛 달콤한맛
     피가되고 살이되니 우리몸에 제일일세

     애호박에 말뚝박고 발길질로 무먹질로
     돌담위의 누른호박 탐스럽고 정겨우니
     지상천국 또있겠나 이내마음 천국일세

    - 무명씨의 "호박"


     퉁기면 열 두 가락 목을 빼면 鶴의 춤이
     일렁이는 여울물에 한동안 쫓기다가
     가난한 동구 밖에서 물이 드는 도라지꽃

     곱게사 여민 靑瓷 물살 환히 밝아 오고 
     다홍 고추 둥둥 띄워 고향의 맛 빚어 낼 땐
     우러러 하늘을 보면 果汁으로 끈끈했다 

     日月을 오르내린 꽃사슴의 발자국이
     神話 저 편에서 무서리로 덮이는 밤
     옷고름 다시 조이는 춘향이의 기침 소리

    - 이우종의 "母國의 소리"


   무명씨의 "호박"과 이우종의 "모국의 소리"를 비교해 보라. 무명씨의 "호박"은 문학성을 따지기

   이전에 우선 율격이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다. 3(4)■4조의 가락과 3장 구조는 그런 대로 갖추고

   있지만 시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장 율격(3■5■4■3)이 흐트러져버린 것이다.

   정형시인 시조문학이 그 형태적 특성을 벗어났다는 것은 "스스로 시조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우종 선생의 "모국의 소리"는 어떤가. 엄격하게 정형을, 그것도 종장의 율격을

   엄격하게 지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할 할 것이다. 


   ■ 心象의 형상화

    이미지(image)는 중요한 시의 요소이다. 시를 시답게 할 뿐 아니라 시의 양감(量感)을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가 바로 이미지의 전개이다.

    앞에서 우리는 "느낌"과 "표현"의 문제를 알아보았고, "말투"와 "어조"를 통한 "가락"과 그 "짜임새"가

    어떤 것인가를 검토해 보았다. 그리하여, 시조가 갖추어놓은 그 리듬구조가 어떤 놀라움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실제 작품을 통해 헤아려 보았다.

    이미지를 보통 형상(形像)이라 하지만, 사상(寫像)과 영상(影像)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나 시조에서는 대체로 심상(心象)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이미지는 감각적 경험과 관계가 있는 그러한 모든 표현이다. 즉 "형상"을 뜻한다.

    어떤 사물이면 사물, 겪은 일이면 그 일을 마음속에다 입력(入力)시켜서 감각적으로 되살려내는

    그러한 표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넓은 뜻으로 보자면 표현하는 일 모두가 "형상"

    아닌 것이 없다 할 정도이므로, 시조에 있어서 이미지의 적용 범위는 대단히 넓고 포괄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이미지는 "비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수사학에서 말하는

    설명이나 장식적인 쓸모가 아니다. 설명, 혹은 장식적 쓸모는 떼어내어도 좋을 때가 많으나,

    이미지를 이룬 표현은 시의 본질적인 표현이므로, 이 요소가 제거되면 시 자체가 무너지거나

    빛을 잃고 말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하면 시 이전의 "잡문(雜文)"으로 타락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시에 있어서 이미지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면서 무시되어서는 안될

    "핵산(核酸)"인 것이다.

    시는 다른 문장과는 달리 간결하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간결한 문장이면서 여러 생각과 느낌들을

    갖도록 하는 것이 시이다. 시조를 포함한 모든 운문이 간결한 문장이면서도 생생한 표현이어야

    한다는 데서 이미지의 형상화는 더욱 요청되며, 비유가 그 역할을 크게 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검은 박쥐떼 같이
     밤은 날개를 펴고
     회한(悔恨)은 파도같이 일어
     기슴 기슭을 부딪는다.
     수묵색(水墨色) 
     짙은 안개 속에
     외로운 나의 항로(航路)여 

    - 이은상의 "밤"의 첫 수 

    이미지는 마음이 되살려내는 감각적인 모습 혹은 그 상태라 할 때 "형상", "사물", "구체적인 것" 등이

    함께 작용되어야 한다. 서벌 시인의 이론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하자.

    이은상의 시조 "밤"의 첫 수는 초장과 중장에다 직유(直喩)의 쓸모를 이용하여 그 일을 이루어내고

    있다. "같이"라는 직유가 두번 씌어진 것이 바로 그 역할이다.

    초장의 경우, 이 한 장을 이루도록 하는 주상(主想) 혹은 중심축이 "밤"이다. 그것도 날개를 폈다는

    밤이다. 우리가 흔히 맞는 "밤"은 그저 어둡고 아늑하게 쉬게 하고, 잠자도록 하는 저적인 밤이다.

    그러한 밤이 날개를 폈다고 하는 데서부터 벌써 시적 상태를 나타낸다. 이 시조의 이미지는 정적인

    밤이 아닌 동적인 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체만으로는 그저 밤의 분위기가 막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점을 구체적인

    상태로 형상화하기 위해 <밤은 날개를 펴고>와 하나이도록 이어 놓았다. 그처럼 서로 연결 고리를

    갖게 하는 다리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같이"라는 직유의 쓰임새이다. 그리하여 밤은 날개를 폈는데,

    그것이 검은 박쥐떼 같이 날개를 폈다는, 눈에 보이듯 구체적인 물상을 끌어들여 사실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조화■통일시켜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주의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검은 박쥐떼"에 관한 문제이다.

    밤이 날개를 폈는데, 한 마리의 박쥐가 날개를 펴듯이 그렇게 편 것이 아니라 숱한 박쥐들이

    떼지어서 날개를 편, 그런 상태라는 점이다. 이 상태에다 "검은"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더하여 보라.

    무엇인가 불길하고 흉흉한 분위기가 감돈다고 볼 수 있다. 어둡고도 불길한 예감, 그런 시대의 밤임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검은 박쥐떼"가 주는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이미지의 쓸모가 있고,

    "같이"라는 직유법이 시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생생한 모습,

    생생한 표현이 되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을 갈파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미지의 작용으로 다음 장을 연결시켜 보라. 또 다른, 독립된 이미지의 작용이 앞의 장과

    연결되면서, 설명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현장감(상태)을 나타낼 것이다.


     회한은 파도같이 일어 
     가슴 기슭을 부딪는다.


    어둡고도 불길한 시대의 이미지를 예감으로 나타낸 바 있는 시인의 내부가 이러하다. 
    일제 강점기를 아프게 겪어내고 8■15와 6■25를 거쳐낸 시인의 내부 상태, 온통 "회한" 뿐인

    상태이다.

    그러나 "회한"은 마음속의 일이다. 그만큼 이 말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언어다. 다함없이 절실하기만

    한, 이 마음속의 일이 어떤 모습을 빌어서 형용(形容)을 나타내지 않으면 구체적인 표현의 리듬을

    탔다고 할 수 없다. 역시 이미지의 쓸모를 지녀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한은 파도같이 일어>

    로 나타나 구체적이면서도 생생한 하나의 모습을 그리게 된 것이다. 어떤 사물을 빌어서 작자의

    마음속이 그러함을 빗대어 나타낸 것이다. <파도같이 일어>난 "회한"이 <가슴 기슭을 부딪는다>

    고 할 때, 내부의 일이지만 외부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두 개의 장이 두 가지 큰 이미지를 조직하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또한

    "같이"라는 직유의 쓸모가 도와주어서 가능할 수 있었음을 확연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수묵색
     짙은 안개 속에
     외로운 나의 항로여.

   초장■중장의 이미지를 하나의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 종장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앞에서와

   같은 직유의 수법이 아니다. "수묵색" 뒤에는 "처럼"이나 "같은"이 붙어 있지 않다.

   바로 "수묵색 / 짙은 안개 속"이다. "수묵색"으로 되어 있는, 그처럼 "짙은 안개 속"이다.

   직유의 역할 없이도 이와 같이 비유해 낼 수 있다. 이것이 곧 은유(隱諭■metaphor)의 수법이다.

   직유의 수법보다는 차원이 한결 높다고 할 수 있는 비유라 할 것이다.

   어둡고도 답답했던 시대 <"회한이 파도같이 일어서 가슴 기슭을 부딪는>, 그와 같은 시인의

   <외로운 항로>, 그 항로가 바로 <수묵색 / 짙은 안개 속>의 항로로 매듭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 든 예문의 시조는 <직유>를 너무 남용하고 있다. 두개의 장이 <직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피하고서 이미지를 짤 수 있어야만 더 좋은 시조, 표현 기법이 능란한

   시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흐르는 물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 이호우의 "산길에서"

   이 시조에서 애써 소재가 될 만한 것을 찾자면, "진달래"와 "물소리"와 "노루" 등 이런 것들이

   하나로 어울린 "산길"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시조는 단순한 하나의 소품에 지나지 않고, 단순한 하나의 서경시(敍景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나 시조는 그런 피상적인 관점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놀라운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란 말이다. 풍경을 설명하고 있는 구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작자의 생각, 내면의식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되 그것이 생생하게 재생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은유만의 능숙한 수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흐르는 물소리

   초장에 이루어진 시각적 이미지는 참으로 신선하기만 하다. <진달래 사태진 골>을 연상해 보라.

   온통 진달래가 산을 뒤덮어 사태(沙汰) 진 그런 골짜기가 아닌가. 그 빛깔을 연상해 보라.

   "진달래"와 "사태"라는 말뜻을 각각 갈라서 느껴 보고 합쳐서 느껴 보라는 이야기다.

   온통 진달래로 (혹은 그 빛깔로) 무너져 내리는 골짜기, 이 극명한 시각적 영상 속에 "돌 돌 돌"하는

   물 흐르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바로 살아서 움직이는 한 폭의 그림 아닌가.

   자질구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요긴한 말로써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 놓기란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은유의 수법으로, 그와 같은 이미지로 짠 채색화(彩色畵)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가장 한국적인 자연 한 폭을 마음에다 이미 담아 두었다가 설명을 말끔히

   걸러내고 심상(心象)만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그것도 매우 감각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것을 잘못 짚으면,그냥 경치를 묘사한 것처럼 느껴지리라)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이 구절 역시 시인의 마음이 그려낸(재생해낸) 아주 주관적인 그림이다. 시인의 마음이 물소리를

   듣고 있는 일이지, 노루가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노루가 듣는 것처럼, 그래서 귀가 "쫑긋"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영락없이 노루가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바로 이미지가 빚어내는 놀라운 효과인 것이다.

    열적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노루가 열적게도 껑청 뛰어달아나는 모습, 그 때문에 봄이 깜짝 놀란다는 일은 거짓말이라도

   이만저만한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실처럼 보이는 것 또한 야릇한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경치가 아닌 마음의 경치이기에 거짓말이 사실이 되며, 사실의 세계를 뛰어넘는 신선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 기법의 한 극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시조가 도달한 이미지의 차원이 어느 정도인가를 재인식할 수 있게 된다.

   * 껑청 = 껑충 뛰는 모습에다 휘청하는 모습을 순간적인 일로 겹쳐 놓은 표현.
   * 뛰달아 = 뛰어 달아나는 순간적인 모습을 그린 합성어(갈봄여름없이■김소월).

   시의 세계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세상(상태)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이처럼 말을 만들어서 (새롭게 압축시켜서) 쓸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만한 효과 때문에

    "봄이 깜짝 놀란다"고 하는, 참으로 빛나면서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순간적인 세계가

   태어나는 것이리라

출처 : 소심한 야수의 하루
글쓴이 : 소심한 야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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