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작법. 8> 창작의 실제(어조) | 時調작법(1) 2004/06/04 22:08
임정일(skyman63) http://cafe.naver.com/ipoem/1312
■ 시조와 語調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은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나른다
천년을 보던 눈이
천년을 파닥거리던 날개가
또 한번 천애에 맞부딪노다
산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서름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여기 소개하는 작품은 우리 나라의
시성(詩聖), 혹은 시선(詩仙)이라고 평가받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작품 "학"의 한 부분이다. 이 작품을 시조시인 이근배 교수는
이렇게 해설했다.
<새 천년이다.
돌아다보면 시의 천년이 숨가쁘게 학의 날갯짓으로 달려왔고 내다보면
더 밝은 시의 천년이 날아오르고 있다. 이 크나큰 시간의 하늘 문 앞에서 미당(未堂)의
학을 만난다. 먼 신라로부터 이 나라 정신의 마디마디를 학의 울음으로 터트려온 미당,
"산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도 "초목도 울려야 할 서름"도 이제는 학의 춤으로 모두 이겨내고
곱게 피어나는 시의 아침이 우리의 가슴을 열어주고 있다.>
"말은 해야 맛이요,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세 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중국 명언이 있다. "애인과 사랑을
속삭일 때는 프랑스 말이 좋고, 장사치와 거래할 때는 영어가 좋다. 그리고 남과 싸울 때는
독일어를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이어령 교수("차 한잔의 사색")는 말한 바 있다.
"말(언어)"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나름의 어조(語調■말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목소리요,
개개인이 지닌 개성이다. 말을 재료로, 또한 표현 수단의 전부로 삼고 있는
시조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조(語調)는 시의 요소이기에 앞서 말 자체가 갖는 중요한 요소이다.
말들이 지니고 있는 태도가 어조이며, 그러한 말투가 또한 어조이다. 침착한 어조가
있는가 하면 흥분된 어조가 있기 마련이다. 말뜻 자체는 밉지 않은데 말하는 투가 미워
가끔 옥신각신하는 때도 있다.
말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뜻은 다같이 하나일지라도 어조에 따라 상대가 받아들이는
느낌의 감도는 사뭇 다르다. 구미가 당기는 시조, 별로 탐탁지 않은 시조가 있기 마련인데,
이와 같은 느낌도 어조가 크게 작용하여 그렇게 되는 수가 많다.
말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는 어조, 시조 한 수에 깃드는 어조의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 이은상의 "가고파" 첫째 수
이 시조가 남다르게 지니는 어조가 있다면, 어떤 어조 때문에 더 남다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그"가 세번 되풀이되는 반복효과에 있을 것이며, <가고파라 가고파>와 같은
이채로운 말짓 때문일 것이다.
<그 파란 물> / <그 잔잔한> / <그 물새들>
이처럼 나타난 각각의 "그"는 지시대명사(강세대명사)의 역할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마음에 맺힌 절실함을 하나 하나의 상태대로 드러내어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는
거듭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 점은 시인이 노리고자 하는 의도이면서 그대로 작자의 말투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점은 서벌 시인이 지적한 대로 "가고파"가 가지고 있는 "가고파"만의
어조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곧 "가고파"가 지닌 독특한 개성이다.
그러나 "가고파"가 갖는 가장 특징적인 어조는 "가고파라 가고파"와 같은 데서 더 짙게
드러난다.
이 점은 이 작품 아홉 수 연작 전편을 통해서 일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한 수씩의 시조가
매듭지어지는 끝에 가서 나타난다.
<가고파라 가고파>■■제1수 끝 부분
<보고파라 보고파>■■제2수 끝 부분
<돌아갈까 돌아가>■■제3수 끝 부분
<찾아가자 찾아가>■■제4수 끝 부분
<그리워라 그리워>■■제5수 끝 부분
<가 안기자 가 안겨>■제6수 끝 부분
<아까와라 아까와>■■제7수 끝 부분
<부러워라 부러워>■■제8수 끝 부분
<노래하자 노래해>■■제9수 끝 부분
이처럼 아홉 수나 되는 긴 연작 시조가 조금도 다르지 않는 방식, 그런 말짓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홉 수나 되는 "가고파"의 유장한 리듬은 명백한 특징일 수 있지만,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말짓들을 되풀이하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첫째 수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채로움은 사라지고 수가 거듭될수록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시나 시조의 "어조"일수록 남다른 면으로 개발되어 씌어져야 하지만, 그것을 남용하면
시조의 격(格)을 떨어뜨리게 한다. 이것이 바로 문학작품이 빠지기 쉬운 묘한 "블랙홀"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독특한 말투일수록 격조를 지녀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남용하게 되면 천박해진다는
뜻이다.
남다른 특징을 보여 주는
어조일수록 적재적소에 가져다 놓아야 제 구실을 한다. 때문에 어조는
단순한 말투가 아니라, 시조를 포함한 모든 시의 스타일을 좌우할 만큼 큰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앵두라 나무 보고
이랑져 굽이치는 서울 기와집 보고
사람도 하여튼간에 그리 사는
거라 느낀다.
그늘로 등을 돌린 건란(建蘭) 두어 분(盆)을
오늘을 두고만 햇빛은 밝았을까만
심심한
세월을 엮은 고책(古冊) 너머 내린다.
- 박재삼의 "가람 선생 댁에서"
더위에 가위눌리어
까딱도 않는 잠의 수렁.
고여 썩어지기로
저 앞내
소(沼)처럼이라면
우리도 썩어 좋으리,
사랑하는 사람아!
한개 낡은 단청(丹靑)의 빛
넉넉한
숲을 짓고
달뜬 연(蓮)을 떠올리어
신명(神明)에로 길을 여는
저 소(沼)는 물이 아닐레
세월 속의 물 아닐레.
쉬 썩기 마련으로
우리는 놓였거니,
설운 잠의 수렁을
온전히 깨어 이 한철을
우리도 썩어야 하리,
사랑하는 사람아!
- 박경용의 "소(沼)처럼"
앞의 두 시조를 잘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른 두 어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벌 시인의 해석에 따르면, 박재삼의 두 수 연작이 방금 막 녹아 내리는, 엿가락을 두 손으로
잡아늘이는 그런 말짓이라면 박경용의 세 수 연작은 잘 엉긴 조청(造淸■물엿)을 백자 항아리에다
부어 내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런
말짓 때문에, 두 시인의 시조 스타일과 작품의 격조(格調)가 사뭇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살펴보면 시인은 자기의 어조대로 시를 쓴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어조는 자기가 개발하고 체계화하여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일궈내야 하는
것이다.
잠이 깬 소녀의 귀밑머리, 귀밑머리
꿈꾸듯 출렁이며 사랑하고 싶었니라.
구원(久遠)의 변경(邊境)을 치는 고백이고
싶었니라.
불붙는 뱃고동은 구천(九天)을 물어 와도
달무리 외로움을 감싸주는 풍금소리■
풀었던 영혼을 씻어
노래이고 싶었니라.
부서지고 싶었니라, 부서지고 싶었니라,
열망(熱望)은 뭍으로 뭍으로만 승화해도
제 모를 가슴을 뒤져
말긋 말긋 흐르더니라.
- 이상범의 "원경(遠景)의 바다"
여기 인용한 세 수의 시조는 온통 반복하고 반복하는 반복조이다. 리듬쪽으로 보면
리듬이고,
어조쪽으로 보면 어조이다. "싶었니라"가 반복된 것이 무려 다섯번, "흐르더니라"까지 같은
표현 기법으로 보면 무려 여섯번이나 된다.
이렇듯 시인의 독특한 어조는 그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특수분장, 혹은 특허상표와 같은
남다른 의장(意匠)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기사-[왕의 남자]의 옥의 티 (0) | 2006.09.16 |
---|---|
[스크랩] <시조작법.9> 창작의 실제(시어의 선택, 표현)/ 윤금초 (0) | 2006.09.15 |
[스크랩] <시조작법.7> 창작의 실제(소재/주제의식)/ 윤금초 (0) | 2006.09.15 |
[스크랩] <시조작법.6> 창작의 실제(느낌과 표현)/ 윤금초 (0) | 2006.09.15 |
[스크랩] <시조작법.5> 창작의 실제(연시조) / 윤금초 (0) | 2006.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