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장검에 대한 설명은 위의 글에서와 마찬가지입니다.
임진전쟁이 일어나기 전 명나라 해안 지방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왜구들의 잦은 약탈이 있었습니다.
이 때 2m에 이르는 긴 야태도를 들고 죽자사자 덤벼드는 왜구에게 당시 명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명 조정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전국의 무사들을 모집하기도 하였습니다.(이 일로 소림사의 武僧들이 유명해진 비화가 있기도 합니다. 실제 소림사 출신인지는 모호합니다만...)
그러다가 척계광에 의해 비로서 체계적인 대응전술이 개발되어 왜구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이 척계광의 전술에 의해 단련된 병사들이 임진전쟁에서도 용맹을 떨친 소위 말하는 '절강병'들입니다.)
이렇듯 당시 중국에서는 일본의 긴 칼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다시 야태도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국에서도 야태도에 버금가는 장도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일본의 유명 만화인 '바람의 검심'의 후반부에 보면 켄신의 첫 아내의 동생이 중국에서 익히고 돌아온 검법이 바로 이 때 중국에서 만들어진 장검술의 하나입니다.)
그것이 다시 임진전쟁 시기 조선에 유입되어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의 검술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쌍수검'이라는 검술로 체계화되어 우리의 검술에도 편입이 되게 됩니다.
하여튼...사설이 좀 길어지긴 했는데...이제부터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의 본론이니다...
대충 이정도의 내용은 왠만한 분들이라면 이제 어느정도 알려져서 다 알고 있는데...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과거처럼 이순신 장군의 장검이 매우 길어서 이순신 장군의 키도 매우 컸을 것이라는 얼토당토 안한 이야기는 사라져 가고 있는데...반대로 중국의 장도나 한국의 쌍수도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럼 과연 저 이순신 장군이 저 장검을 휘두르며 싸웠겠느냐 하는 점에 또 다른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2m가 넘는 칼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이순신 장군의 장검 역시 실전용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저도 예전에는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순신장군의 장검은 '의장용'이었을 뿐 실전용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야태도나 무예도보통지에 나와 있는 쌍수검과의 재원 면에서는 어느정도 일치하기는 하지만 칼날의 두께라던가 무게 면에서 도저히 '인간'이 들고 휘둘 수 있는 무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장검을 들고 전투를 지휘했다거나 뽑아 들고 휘두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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