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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정량궁(正兩弓)

_______! 2008. 10. 29. 15:04


정량궁(正兩弓)은 주로 무과 과거시험에 사용하던 활이다.

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 전수 조교인 유세현씨는 “정량궁도 넓게 보면 각궁의 일종인데 과거시험을 위해 특정 규격으로 만든 각궁이 정량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량궁의 제작 방법은 각궁과 유사하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각궁보다 더 큰 것이 특징이다. 정량궁은 길이가 5자 5치로 일반적인 각궁의 약 두 배 길이다. 이 때문에 흔히 ‘큰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 시대 과거시험 무과 과목은 크게 강서(講書)와 무예(武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강서는 병법 서적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이론시험이었고 무예는 말 그대로 무술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조선 전기의 무예시험은 다시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擊毬) 등 6개 종목으로 구성됐는데 그 중 4개 종목이 활과 관련된 시험이었다. 그만큼 활 실력은 무인으로서의 재능을 평가하는 핵심 잣대였던 것이다.

무예시험 종목 중 목전·철전·편전은 모두 화살의 종류에 따른 활 사격시험이었고 기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종목이었다. 기창은 말 위에서 창(槍)으로 전투하는 능력을 살펴보는 종목이었고 격구는 요즘의 폴로 경기와 유사한 마상 스포츠의 일종이다. 조선 후기에는 무예시험 종목이 10개로 확대됐는데 이때도 6개 종목이 활쏘기에 관한 시험이었다.

정량궁은 무예시험 종목 중에서도 특히 철전시험에 주로 사용됐다. 무예시험에 사용하는 철전은 육량전을 의미했다. 이 화살은 무게 240g, 길이 80cm 정도로 일반적인 화살 무게(30~60g)의 네 배가 넘는 무거운 화살이었다. 이런 특수한 화살을 쏘기 위해 활도 특수한 정량궁을 사용한 것이다.

정량궁은 활의 몸체(體幹)가 두텁고 커서 시위를 당기는 데 매우 큰 힘이 필요했다. 활 쏘는 사람이 활을 당길 때 몸을 후퇴약진하며 반동력까지 이용해야 제대로 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특수한 활과 화살로 시험을 치른 이유는 명중률뿐만 아니라 활의 시위를 당기는 힘(궁력)을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철전시험의 사거리는 80보(96m)였는데 세 발을 쏘아 적어도 한 발은 80보에 도달해야 했다. 한 발도 80보에 도달하지 못하면 무조건 과락이었다. 평소 활쏘기에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육량궁으로 철전을 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에 철전시험은 무과시험 응시자의 연습량을 판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유씨는 “일반적인 각궁과 달리 정량궁은 개항과 조선 왕조의 멸망을 전후해 제조법 전승이 끊겼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취미용 활쏘기에 사용하는 각궁과 달리 정량궁은 무과시험에 주로 사용하는 활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제조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실물 유물의 경우 고려대 박물관·연세대 박물관에 정량궁 각 1점이 보존되고 있다.

연세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정량궁(사진)은 길이 168cm로 각궁의 평균 길이(120cm)보다 긴 편이며 활 몸체에 무(武)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8. 25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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