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고려시대 방패

_______! 2008. 10. 29. 15:08


고려 시대 무기류는 한국 전통 무기 분야 유물 보존과 연구에 있어 일종의 공백지대라고 할 수 있다. 삼국 시대와 달리 고려 시대 고분에는 무기류를 부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 시대 무기류처럼 전세품(傳世品)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실물 유물이 남아 있는 경우가 희귀한 것이다.

방패류도 마찬가지다. 삼국 시대 방패들은 벽화·토기 등을 통해 그 형태를 유추할 수 있고 우리나라 유물로 추정되는 방패가 일본에 전해 오기도 하지만 고려 시대 방패 실물 유물은 현재 단 한 점도 전해 오지 않는다. 다만 역사 기록에서 방패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고려 시대 방패의 형태와 사용법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고려 시대 방패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기록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남아 있다. ‘고려도경’은 중국 송나라 사신이었던 서긍(徐兢·1091~1153)이 1123년 고려를 공식 방문하고 남긴 일종의 기행문이다. 서긍은 고려에서 본 방패 중 수패(獸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수패의 몸체는 나무이고 뒷면에 가죽을 덮고 앞에 사자 모양을 그렸다. 위에 다섯 개의 칼을 꽂고 꿩 꼬리로 가렸는데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능히 상대방을 찌를 수 있다. 다만 그 방패는 아이가 가지고 노는 물건 같으니 충분히 화살과 돌을 막아 내지는 못할 듯하다.”

서긍에 따르면 고려의 수패는 칼이 꽂혀 있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견고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각종 기록을 보면 고려 시대에도 방패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동문선’(東文選)을 보면 고려 시대의 합포성을 설명하면서 “성벽 위에는 매 2척마다 방패 1개, 창 1개, 깃발을 세운다”고 묘사하고 있다. 성벽 위에 방어용으로 방패를 추가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고려사절요’에도 1052년 동여진이 침공해 오자 “수장(守將) 하주려가 방패를 끼고 칼을 빼어 적을 향해 나아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책을 보면 윤관 장군이 1107년 여진족의 9성을 공격할 때 벌어진 석성(石城) 전투에서 “장군 척준경이 갑옷을 입고 방패를 가지고 적중에 돌입해 추장 두서너 명을 쳐 죽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특히 척준경의 사례는 실제 방패가 공격용으로 사용됐음을 보여 주는 기록으로 주목된다.

고려 시대 방패와 관련된 흥미로운 자료 하나가 일본에 남아 있다. 사이타마(埼玉)현 박물관에 소장된 ‘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라는 13세기 그림(사진)이 그것.

고려·몽골 연합군의 일본 원정(1281~82)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몽고습래회사’는 당시 병사들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에는 고려 혹은 몽골군의 것으로 짐작되는 방패가 나오는데 병사들이 나무로 만든 방패를 진형 앞에 세워두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이 병사들이 고려군인지 혹은 몽골군인지, 그도 아니라면 중국 한족 계열의 강남군(江南軍)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로서는 고려군도 이와 유사한 방패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간접적 추정 자료로 가치가 있을 뿐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2. 1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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