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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과(戈)

_______! 2008. 10. 29. 15:13


과(戈)는 모(矛)와 함께 가장 고전적인 창 종류 중의 하나다. 과는 금속제 날을 나무자루 끝에 직각 방향으로 부착한다는 점에서 다른 창과 구별된다.

과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서양이나 중동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아시아 특유의 무기다. 중국에서 과는 기원전 16세기 은(殷)나라 시절부터 사용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 사이에 주로 사용했으며 재질상 거의 대부분 청동으로 만든 동과(銅戈)다.

한국의 과는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구체적 형태에는 차이가 있어 한국적인 특색을 드러낸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과는 약 30점이며 서울 육군사관학교 내의 육군박물관에서도 동과를 소장하고 있다.

과는 창의 일반적 용법인 찌르거나 베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과는 ‘ㄱ’자 형태의 날을 활용, 적의 목이나 팔다리를 걸어 당기는 용도로 사용한 무기였다.

과는 특히 중국의 고대 전차(戰車)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인 전차에는 세 명이 탑승하는데 중앙의 병사가 전차를 조종하고 좌우 양쪽 병사가 과를 휴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과는 상대방 전차에 타고 있는 병사들을 잡아당겨 떨어뜨리기에 가장 적합한 무기였다.

전차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런 속도감 있는 전투에서는 찔러서 공격하는 전형적인 창보다 과처럼 잡아당길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내려찍을 수 있는 무기가 훨씬 효율성이 높다.

과는 그야말로 전차전에 특화된 무기였던 것이다. 때문에 중국에서 전차가 쇠퇴하고 말을 타고 싸우는 기마전(騎馬戰)이 활성화된 진(秦)·한(漢) 시대에 과도 점차 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달리 전차가 실전에서 사용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가 출토되고 있어 한국의 과는 주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김기웅(金基雄) 박사 등 고대 무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과는 전차전이 아니라 보병이 적 기병들을 상대할 때 사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자 중에는 한국의 과는 실전용 무기가 아니라 지배층의 신분을 상징하는 일종의 의장용 무기였다는 데 무게를 두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전형적인 과는 우리나라에서도 삼국 시대에 이미 사용하지 않게 된다.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에도 과가 보이지만 이때의 과는 형태상 창에 가까운 무기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4. 1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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