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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전통무기] 삼국시대의 갑옷과 군장

_______! 2008. 10. 29. 15:15


지금까지 삼국시대 군대의 모습을 어느정도 고증 해봤지만 약간 포괄적인 것 같아서 이번에는 갑옷과 군장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알아 볼까 합니다. 애초에 저 자신도 비 전문가로서 거의 도전하는 식으로 달려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다시보면 어.... 저것이 아닌디.... 그런면도 다소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공부는 많이 된 것 같습니다.


투구

삼국시대의 투구는 여러 나라가 다양한 문화권과 교류를 하면서 격돌해서 그런지 형태가 타 시대에 비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 종장판주


 현재로선 가장 많은 출토량을 보이고 있고 지역적으로 주로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신라권에서도 춭토 되었습니다. 대체적인 특징은 유럽이나 서아이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볼가리개(뺨보호대)가 특징입니다.






위의 사진은 우리의 종장판주와 가장 근접한 형태의 투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작 공법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만... 가장 형태 면에서 유사한 투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옆에는 볼가리개가 있고 뒤쪽에는 수미부 가리개가 있는 형태로 종장판주와 매우 흡사합니다. 확실히 종장판주는 유럽적이면서도 아랍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투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쪽에선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한반도(가야,신라지역)에서만 나오는 투구형태입니다. 고구려의 투구도 벽화에 묘사된 형태를 봤을 땐 종장판주와 같은 구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차양주



모자처럼 창이 달려 있어서 차양주라고 불리는 투구입니다. 이런 유형의 투구는 일부 가야권과 백제권에서 출토되며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려시대 이후로는 사실상 한국의 주력 투구의 유형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착용방식은 그냥 턱끈 방식인지 종장 판주처럼 볼가리개가 있었는지
사진상으로는 판단이 안되고 오른쪽의 예를 보면 철판으로 된 수미부 가리개는 있었던 듯 합니다.




조선의 차양주 입니다.




일본의 차양주.


◆ 충각부주



충각부주라는 투구인데 요즘의 군용 철모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한국보단 일본에서 많이 출토 되기 때문에 원산지가 일본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는 군요.




위의 피규어가 쓰고 있는 것이 충각부주를 재현한 거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복원한 겁니다.


◆ 소찰주



소찰주라는 투구를 구성하는 일종의 쇠미늘입니다. 아마 쇠미늘로 만든 투구인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것은 크기가 작아서 투구의 표면을 장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종류도 있습니다.




위의 보시는 형태는 서양에서 사용하는 체인 메일 투구인데 쇠미늘로 저런 형태를 구현한 것이 소찰주가 아닌가 합니다. 고구려 벽화에도 유사한형태가 보이고 있고 실제 유물이 발견 된 것을 봐선 가야나 신라 쪽에서도 사용이 되었던 듯 합니다.


위의 벽화에서 그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쇠미늘 갑옷과 함께 사용된 듯 합니다.



갑옷

◆ 쇠미늘갑옷




쇠미늘갑옷의 쇠미늘입니다.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 고구려 벽화이고 가야 지방에서는 일부 쇠미늘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가야지역에서는 종장판주와 함께 사용 되었습니다.




쇠미늘 갑옷의 재현품입니다. 고구려의 것도 벽화를 분석해봤을 때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소매의 길이에서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손목까지 내려오는 긴팔 소매도 보이고 있고 어떤 것은 아예 소매가 없고 몸통만 방호하는 형태도 보입니다.(수문장의 예) 갑옷 마다 차이가 조금식 있지만 고구려의 갑옷도 위의 형태에서 크게 벋어나지는 않는 듯 합니다.


판갑

◆ 종장판갑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판갑이며 종장판주와 함께 한국에서만 출토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갑옷입니다. 철판을 통째로 곡면을 따라 모양을 낸 기법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주로 종장 판주와 함께 착용했던 것 같습니다. 신라와 가야권에서 발견되고 있는 갑옷입니다. 아마도 신라(보병)의 주력 갑옷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횡장판갑



횡장판갑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철판을 횡대로 연결해서 제작하는 방식이라 그렇게 부르는 듯 합니다. 충각부주와 함께 출토되고 있어서 충각부주와 같이 사용된 듯 합니다. 가야권과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고 백제권에서도 1점 나왔습니다.


◆ 삼각판갑



이어서 만든 철판이 삼각판구조라서 그런 명칭이 붙은 것 같습니다. 주로 차양주와 함께 쓰인 것 같고..... 가야권과 백제권에서 출토 되고 있습니다.

판갑은 처음 신라, 가야권에서 출현해서 백제권과 일본으로 퍼지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형태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후기에 오면 신라,가야권은 가슴부위의 소용돌이 문양으로 대표되는 후기형 종장판갑으로........ 백제와 일본, 일부 가야권에서 삼각판갑,장방판갑,횡장판갑등의 형태로 발전 한 것 같습니다.



다리보호대

주로 쇠미늘 갑옷과 함께 사용 되는 것으로 고구려 벽화를 분석해 보면 크게 두종류가 보입니다. 우선 바지형과 포형(그냥 제가 붙인 명칭입니다.)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바지형 보호대



위의 벽화에 그려진 기병의 하반신을 보면 바지형 다리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보시면 바지형태의 다리 보호대의 착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보통 저런유형은 패르시아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인데 고구려도 그쪽의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동양쪽 보다는 서양식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 포형 보호대




위의 두 그림들을 비교 해보면 위의 경우는 바지형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지만 아래의 그림은 형태로 보건데 바지형은 아닌 듯 싶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다리 보호대를 유심히 보시면 바지형태와는 달리 다리의 바깥면만 방호하도록 되어 있는데 저런 행태는 가까이는 중국에서 멀리는 중앙아시아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허리띠(군용벨트)

◆ 쇠미늘방식(개인적으로 붙인 명칭입니다)



가야 고분에서 발견된 갑옷에 착용하는 철재 허리띠라고 합니다. 쇠미늘을 연결해서 제작된 것 같은데....... 버클 방식은 아닌 듯 하고 가죽끈으로 매듭을 묶는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 벨트방식

 

유사한 물건이 황남동 98분에서도 출토 되었는데 마구와 무기류, 갑옷 투구와 함게 출토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군장용 벨트인 듯 합니다. 착용방식은 버클 방식입니다. 비교적 고관대작이나 지휘관들이 사용할 수 있었고 일반병사들이나 하급 지휘관들은 가죽 벨트였을 것 입니다.




대략 형태를 봤을 땐 이런식에 가까웠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가리개



위의사진은 목 가리개입니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뚜 렷하게 확인되고 있고 가야쪽에선 실물도 출토 되고 있습니다.




고구려 벽화에 뚜렷이 확인되고 있는 목가리개의 모습입니다. 주로 쇠미늘 갑옷과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견갑

 

목주위와 늑골 부위를 보호하기 위한 방호구로 횡장판갑이나 삼각판갑과 함께 사용됩니다.


어깨 보호대



주로 어깨와 팔의 상부를 보호하는 방호구입니다. U자형 철판이 여러장 연결된 구조인데 주로 삼각판갑이나 횡장판갑, 견갑과 함께 셋트를 이룹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로마군입니다.




실제로 착용한 모습인데 동양쪽 보단 서양식 방호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분 유물에서 로마유리까지 출토 되는 것을 보면 군사 문화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을 것입니다.


팔목 보호대, 정강이 보호대



손복 보호구로 비갑이라고 불립니다. 수갑처럼 채우거나 풀 수 있게 되어있는 개폐식입니다.




정강이 보호대로 황남동 98호분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그리스나 로마군이 사용한 것을 참고 해보면 아래는 개폐식으로 발목에 고정 시키고 무릅쪽은 가죽 밸트로 붙들어 매는 방식일 것으로 생각 됩니다.





◆ 환두 대도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주력 칼입니다. 1~2세기 무렵까진 단검이 많이 사용된 듯 하고 이후 단검을 대신해서 주력 무기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 단검



대략 30 ~ 40Cm이하의 짧은 검을 말합니다. 1~2세기 이후에 70Cm이상의 장검과 환두대도로 대표되는 고리칼의 출현으로 사실상 주력의 자리를 넘겨주고 보조 무기로 활용된 듯 합니다. 중기나 후기에도 저런 형태가 그대로 유지 되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 방패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님들이 방패를 들고 싸우는 모습은 잘 연상이 않되는 듯 하지만 고구려 벽화에도 보병이 장방패를 들고 있고 가야의 토우에도 방패를 들고 있는 기병이 묘사 되고 있으며 실재 방패를 장식했던 장식이 발견 되기도 한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방패가 상당히 사용 된 듯 합니다. 그리고 방패를 칠한 것으로 보이는 칠의 흔적도 확인 된다고 합니다. 중국쪽 기록에도 해동 사람들이 방패를 잘 다루고 보병 전투에 능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에는 칠지도와 함께 백제산으로 추정되는 철 방패(첮번째 사진)가 소장 되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종류별 복식재현

◆ 쇠미늘 갑옷




 

투구는 종장판주, 목 가리개와 갑옷은 쇠미늘 갑옷에 다리 보호대는 바지형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어색해 보이긴 합니다만... 형태를 이해 하시는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가야권에도 고분 유물로 확인되는 유형입니다.




위와 동일 하며 다리 보호대를 포형 보호대로 하였습니다.






고구려 벽화의 보병을 재현한 것 입니다. 투구는 종장판주로 설정 하였고 쇠미늘 갑옷과 장방패를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목 가리개와 다리 보호대는 없습니다.


 

고구려벽화의 궁수를 재현 해본 것.


◆ 판갑






투구는 종장판주, 갑옷은 종장판갑(후기형으로 가슴의 소용돌이 무늬가 키 포인트), 손목 보호대(비갑), 정강이 보호대, 원형방패를 기본 모티브로 했습니다.







충각부주와 견갑, 어깨 보호대, 횡장판갑, 손목 보호대(비갑), 정강이 보호대와 원형 방패를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투구는 차양주, 견갑, 어깨 보호대, 삼각판갑, 손목 보호대(비갑), 발목 보호대, 백제(?)의 철방패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뭐 짜집기 식이라 좀 이상해 보이지만 형태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저로선 이정도 복원 해보는 것이 한계로 군요.



군장

이번에는 갑옷위에 걸치는 칼 및 허리띠와 같은 군장을 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의 벽화에 묘사된 고구려 사절단입니다. 고구려인 특유의 절풍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통 저런 방식은 갈집에 달린 두 개의 고리에 가죽끈으로 여결한 뒤 벨트에 거는 방식인데 삼국시대 유물중에 버클이 많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저런 방식이 충분히 납득은 갑니다. 그리고 환두 대도를 보면 칼집에 고리가 확인 되기도 합니다. 흔히 우리나라의 사극들을 보면 무장들이 칼을 왼손에 들고 다니는데 확실히 고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환두 대도, (2)단검(or 손칼), (3)허리띠, (4)멜빵
뭐 그림이 허접해도 다소 양해를........ 환두 대도는 칼집의 두 개의 고리에 가죽끈으로 걸어서 벨트에 거는데 아마도 고리가 잇었을 것입니다. 신라 고분에서 실재로 황금사자 머리의 고리가 나왔던데 가죽끈을 거는...... 그런
용도로 사용된 고리가 확실 할 것입니다. 단검은 초기 철기 시대의 단검을 참고한 거지만 허리에 착용하는 방식은 다 비슷할 것 같습니다. 칼집의 고리에 저런 식으로 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4)는 벨트에 칼이나 군장을 달고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무게 때문에 단단히 조인다 해도 흘러 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하는 군용 멜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군장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오늘날에도 탄띠를 멜때 X대라고 해서 군용 멜빵을 추가로 착용합니다. 뭐 요즘은 방탄조끼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사라지는 추세라고는 합니다만.........



환두 대도는 아니지만 그냥 참고로........... 위의 것은 로마군의
예인데 유물들을 보면 위의 형태와 유사한 버클이 달린 군용벨트가 삼국시대
한반도에서도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무리

전반적으로 평을 해본다면 고구려의 군대는 다분히 페르시아풍의 분위기가 연상되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 백제, 가야, 신라쪽은 뭔가 그리스틱한 느낌을 주고 그러면서도 백제쪽은 차양주 같은 투구를 보면 중국풍을 느끼게도 합니다. 백제의 경우는 약간 이원화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초기 백제의 유물에서 뼈 미늘갑과 중국풍의 투구가 나왔는 데 지정학적인 위치를 본다면 본디 백제는 중국적인 군대였을 가능성 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가야 신라의 접경지역의 경우 가야와 신라의 판갑에 대항하기 위해 판갑으로 무장한 군대가 주둔 했던 것 같고 서부 지역이나 대륙쪽은 중국식의 군대였을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 철제 차양주와 삼각판갑이 가야권 내의 접경 지역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중세 오스만 제국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는데 중부 아시아 접경 지역은 흔히 동양식에 가까운 군대가 주둔 했지만 유럽과 접하고 있던 발칸 반도에 주둔한 군대는 유럽처럼 완전히 철판 부대였다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고구려, 가야, 신라로 이어지는 라인이 공통 분모가 느껴지는 면도 있습니다. 가야 권에서 고구려식 소찰주와 쇠미늘 갑옷이 출토 되기도 하고 고구려의 투구와 가야, 신라의 종장판주가 유사한 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구려의 경우에도 판갑을 사용 했을 가능성에 대해 저는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벽화나 실재 유물로 확인은 안되고 있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봐집니다.

일반적으로 쇠미늘 갑옷은 기병이 착용하고 판갑은 보병이 착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그렇지만 꼭 100%원칙대로 지켜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분 유물을 보면 마구와 함께 판갑이 나온 경우도 있고 고구려 벽화의 보병처럼 가야에서도 보병이 쇠미늘 갑옷을 입기도 했을 것입니다. 칼로 두부 썰 듯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본인이 나름대로 평가 해볼 때는 삼국시대의 전투 양상은 지금것 우리가 가지고 있던 통렴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단 지금까지 나온 유물들을 바탕으로 유추 해보면 철제 투구에 쇠미늘 갑옷이나 철판 갑옷을 두르고 방패와 창, 전투용 도끼를 들고 맞 부디치는 그런 모습이 연상됩니다. 물론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고 부대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요. 쇠스랑 하나 들고 싸우는 농민병들도 있겠고 허접한 군장을 갖춘 잡군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소위 주력 부대끼리의 전투 양상은 그런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편적으로 세계의 전사에서도 실재 전투에선 도검류 보단 창이나 도끼, 메이스 같은 둔기류가 주력이며 도검류는 보조용 무기로 치부 됩니다. 삼국 시대의 전투 양상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실재로 다량 출토 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도끼날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당시 한반도 지역에선 전투용 도끼가 주로 사용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목 보호대와 정강이 보호대는 꼭 저런 형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저것 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것으로 통일 한 것입니다. 실제 다른 형태도 본적이 있습니다. 판갑의 경우는 단순히 유물만을 참고 했기 때문에 저런식으로 재현 했지만 아마 속에다 가죽이나 두꺼운 천으로 된 내피를 착용해서 의복이나 피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로선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가 엇기 때문에 그냥 저런식으로 재현 했습니다.


◆ 자료출처

  • http://www.nonsanmuseum.net
  • http://museum.kma.ac.kr
  • http://todori.inje.ac.kr/~kaya
  • http://www.swords.pe.kr
  • http://haenara.net
  • http://www.militaryreview.com
  • http://cafe.daum.net/shogun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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