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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날을 명절로 삼았는가. 1년 농사일을 대강 끝내고 이날부터 여름휴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칠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호미 ‘서(鋤)’자를 써서 ‘세서절’(洗鋤節)이라고도 한다. ‘호미를 씻는 날’이다. 호미를 들고 일하던 머슴들이 농사일을 끝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날은 노동을 하던 하인과 머슴들에게 반가운 날이기도 하였다. ‘견우’와 ‘직녀’라는 표현도 노동과 관련이 깊다. 견우는 남자가 소를 몰고 하던 농사일을 상징하고, 직녀는 여자가 옷감을 짜는 일을 상징한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데는 남녀가 노동을 멈추고 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천문학(古天文學)에서 보면 자미원(紫薇垣) 한가운데에 있는 천황대제(天皇大帝:북극성)와 북두칠성이 만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음력으로 7월6일 저녁부터 만나기 시작한다. 6일 저녁은 칠석날의 전야제였다. 칠석 명절은 6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기망(旣望)인 16일까지 계속되었다. 합하면 모두 11일을 명절로 여겼던 셈이다.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의 첫대목이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기망(七月旣望)’으로 시작된다. 칠월기망은 음력 7월16일이고, 이날은 칠석축제의 마지막 날이면서 달이 밝기 때문에 배를 띄워놓고 놀았던 것이다. 고대 농경사회의 달력에서는 보름달이 기점이 된다. 정월 보름이 1년을 시작하는 ‘대보름’이라면, 7월 보름은 전반기를 마감하고 후반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축구에 비유하면 ‘하프타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7월 보름을 ‘백중(百中)’이라고 불렀다. 모든 절기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이를 종합하면 칠석 전날부터 백중 다음날 까지는 고대사회에서 농사일을 일단 끝내고 쉬던 날이다. ‘정역’에서는 이 기간을 ‘농부세서 세공성(農夫洗鋤 歲功成)’이라고 노래하였다. ‘농부가 호미를 씻으니 그해의 일이 이루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