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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거세에서 최치원까지... 신라사학보 4집

_______! 2006. 11. 16. 19:57
혁거세에서 최치원까지... 신라사학보 4집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신라사 전문학술지인  '신라사학보'(신라사학회 발행) 4집이 나왔다. 이번 호에는 혁거세에서 최치원에 이르기까지  신라사  면면을 천착한 연구논문 6편을 중심으로 그 외 번역과 자료소개 및 서평으로 꾸몄다.

    대전 한밭대 심정보 교수는 당(唐)이 "백제.고구려 두 나라를 평정하고는  평양 이남 땅은 모두 신라에 주겠다"는 약속을 위반하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 야욕을 노골화하는 '나당(羅唐) 전쟁기 신라의 북경(北境. 북쪽 영토) 의식'을 추적했다.

나당 전쟁 결과 신라는 북쪽으로 임진강과 함경도 덕원에 이르는 경계선까지 영역을 확보하는데 그치기는 했으나, 이 전쟁은 당과의 약속 쟁취를 위한 힘든 선택이었고, 나아가 이는 자주적 영역 확보의 소산이었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이현숙 이화여대 강사는 조정에 소속된 관료 의사에 대비되어 '신라의 민간  의료인'에 대한 연구에 천착해 그들의 분류와 특성을 고찰하려 했다.

    저자에 의하면 신라 민간 의료인은 처음에는 왕실에 소속되었다가 지위가  격하된 무의(巫醫), 승려 출신 승의(僧醫), 조선시대 유의(儒醫. 유학자 출신 의사)  전신격인 학의(學醫), 그 외 민의(民醫)의 4부류로 대별할 수 있다고 한다.

    신라하대사를 주로 연구하는 조범환 서강대 박물관 연구교수와  장일규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각각 '신라 하대 지증도헌(智證道憲)과 희양산문(曦陽山門)의 성립'과 '최치원의 삼교(三敎) 융합사상과 그 의미'를 파고 들었다.

    조 교수에 의하면 희양산문 개창자인 지증도헌(824-882)은 당시 다른 신라 고승들과는 달리 중국에 유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종선보다 북종선을 익혔다는 점에서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처음에는 왕실과 거리를 두었던 도헌은 나중에는 헌강왕의 후원에 힘입어  선종 전파에 노력했으며, 그 일환으로 봉암사로 옮겨 그곳에서 희양산문을 개창했다.

    장 교수는 최치원이 유불선(儒佛仙) 융합을 통해 신라사회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실과 육두품 중심이라 골품의 신분제가 동요될 때는  실현되기 어려웠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의 이런 융합론은 육두품 지식인들에 의해 고려에  전승되어 사상계는 물론 사회통합을 꾀하는 방안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김태식 씨는 '지상에 강림한 천황대제(天皇大帝)로서의 박혁거세'라는 논문을 통해 백마(白馬)가 천상에서 운반해온 자란(紫卵. 자주색 계란)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신라건국신화는 그가 곧 북극성을 신격화한  천황대제(天皇大帝)의 자손임을 선전하는 장치라고 주장했다.

    논문에 의하면 동아시아 천문론에서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으로 설정되었고,  더구나 자주색 빛을 낸다고 간주됐으며 나중에는 도교신학에 포섭되어 천황으로  신격화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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