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흑각궁(黑角弓)과 향각궁(鄕角弓)

_______! 2008. 10. 29. 15:05


앞에서 설명했듯이 각궁의 주재료인 물소뿔은 조선에서 생산되지 않았다. 물소뿔은 주로 동남아시아나 남중국에서 생산됐는데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 이 물소뿔을 수입했다. 당연히 물소뿔을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일은 조선 왕조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조선 왕조는 수시로 명나라에 물소뿔의 판매량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명나라는 무기재료로 사용되는 물소뿔의 수출량을 1회 교역당 50개 정도로 항상 일정하게 제한했다. 각궁은 조선의 주력 무기였으므로 각궁의 재료인 물소뿔은 결국 조선 왕조의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물자였던 셈이다.

조선 왕조는 만성적인 재료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물소뿔의 사용 용도를 엄격히 제한했다. 1460년 5월 국왕 세조는 “말과 소, 물소뿔 세 가지는 나라의 보물”이라고 지적하면서 “물소뿔을 활이 아닌 다른 공예품의 재료로 이용하는 것을 엄금하라”고 의정부에 지시한 것이 전형적 사례다.

이처럼 중요한 물소뿔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각궁의 제조비용도 높을 뿐더러 재료의 안정적 공급을 기대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 시절 조선 왕조는 중요한 전략물자를 외국에 의존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물소를 국내에서 사육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따뜻한 열대지방에서 주로 사육되는 물소는 한국의 기후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사육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비싸고 귀한 물소뿔이 아닌 국산 황소뿔을 사용한 각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활은 국산 각궁이라는 의미에서 향각궁(鄕角弓)이라고 부른다. 향각궁은 흑각궁보다 활이 잘 부러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재료를 구하기가 쉬운 것이 장점이었다.

국산 황소뿔은 물소뿔에 비해 길이가 짧기 때문에 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황소뿔 세 개가 필요했다. 때문에 향각궁을 뿔 세 개를 사용해서 만든 활, 다시 말해 삼각궁(三角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황소뿔은 색깔이 희기 때문에 백각궁(白角弓)이라고도 호칭했다. 이에 반해 수입 물소뿔은 뿔이 검기 때문에 물소뿔로 만든 전형적인 각궁은 흑각궁(黑角弓)이라고도 부른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의 각궁은 크게 나누어 흑각궁과 향각궁(삼각궁·백각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일반 병사들의 경우 각궁은커녕 향각궁도 사용하지 못했고 목궁(木弓)이나 죽궁(竹弓) 같은 더 간단한 활을 사용했다.

같은 각궁이라도 활에 뿔을 붙이는 길이에 따라 다시 두 종류로 나뉜다. 활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후궁뿔 끝까지만 뿔을 짧게 붙이는 각궁은 ‘휘궁’ 혹은 ‘후궁’이라고 부른다. 활의 양 끝부분(고자)을 제외한 활의 거의 전체 부분에 뿔을 붙인 활은 ‘장궁’이라고 불렀다. 장궁이 뿔을 많이 사용하므로 성능이 더 좋고 비용도 더 많이 들었다.

결국 물소뿔로 만들고 장궁으로 만든 활, 흑각장궁(黑角張弓)이 가장 성능이 우수한 각궁이었던 셈이다. 이런 흑각장궁은 너무 고급 활이라 실전이 아닌 연습시에는 사용을 금지할 정도로 귀중한 무기로 평가받았다. 1460년 국왕 세조는 “흑각궁은 연습으로 쓸 수가 없으며 앞으로 나도 연습시에는 흑각궁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8. 18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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