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시복(矢服)

_______! 2008. 10. 29. 15:09


현대 군사 용어 중에 ‘기본 휴대량’(Basic Load·BL)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 또는 편제부대가 보유하도록 인가된 각종 탄약의 양(量)이 바로 기본 휴대량이다.

기본 휴대량은 각 화기나 부대별 보유 수량으로 표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현대 미군의 M16A2 소총의 개인별 기본 휴대량은 30발이 들어가는 탄창 7개, 다시 말해 210발이다.

조선 시대 군인들의 무기 기본 휴대량은 어느 정도였을까. 조선 후기의 대표적 군부대인 훈련도감(訓鍊都監) 마군(馬軍·기병)들의 주무기는 활이었다. 이들 마군의 화살 기본 휴대량은 긴 화살인 장전이 20발, 길이가 짧은 특수 용도 화살인 편전이 15발이었다. 조선 후기 기병들의 화살 기본 휴대량은 35발이었던 셈이다.

현대의 각국 군인들은 보유한 탄환을 잃어버리거나 총기를 분실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직업 군인인 훈련도감의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법을 연습할 때 장군들이 제비를 뽑아 병사들의 장비 수량과 상태를 점검했는데 부대에서 지급한 활이나 화살이 파손된 자는 곤장으로 처벌받았다.

분실했을 경우 처벌이 더욱 가혹했다. 곤장에 더해 배상까지 해야 했다.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개인 돈을 들여서라도 장비를 보충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단, 부대에서 지급한 물품을 진법 훈련이나 기타 공무로 파손했을 때는 처벌 없이 곧바로 교환해 주었다.

조선 시대 군인들이 개인별로 지급받은 화살을 휴대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다양했다. 지난 회에 소개한 전통(箭筒·화살통)을 실전용보다 연습용으로 많이 사용했다면 실전에서 주로 사용한 화살통은 보다 간단한 시복(矢服)이나 동개였다.

시복은 돼지 가죽이나 사슴 가죽 혹은 천으로 만든 길이 10~30cm 크기의 화살 주머니다. 신축성이 있는 가죽제라서 전통보다 휴대가 더 간편하고 실전 상태에서 화살을 용이하게 뽑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조선 후기의 시복(사진)은 검은 가죽 위에 두석(놋쇠) 등으로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 후기의 시복 중에는 화살의 끝 부분만 살짝 꽂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종류의 시복도 있었는데 활주머니인 궁대와 결합해서 사용했다. 이렇게 궁대와 소형 시복이 결합된 것을 동개라고 불렀다. 활과 화살을 편리하게 세트로 휴대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동개인 것이다.

개인별로 휴대하지 않고 부대나 성(城)에서 대량의 화살을 보관할 때 사용한 특수한 상자도 있었다. 전궤(箭櫃)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의 탄약통과 비교할 만한 전궤는 전체 평면 형태가 직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꼴에 가깝다. 화살은 촉 부분보다 깃이 달린 아래쪽이 넓게 마련이어서 화살 형태에 맞춰 상자 자체도 사다리꼴로 만든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1. 24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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