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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순례 - 녹로노

_______! 2008. 10. 29. 15:10


1767년(영조 43년)에 간행된 쇠뇌 관련 서적인 ‘노해’(弩解)에는 기계적 장치를 활용해야 시위를 당길 수 있을 정도의 대형 쇠뇌가 등장한다.

강노(强弩)·중노(中弩)·소노(小弩)가 바로 그러한 대형 쇠뇌들이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의 대형 쇠뇌들은 이름만 남아 있을 뿐 구체적인 작동 방법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대형 쇠뇌들은 각종 서적에 상세한 도면과 설명이 남아 있어 작동 원리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노해’를 살펴보면 조선 시대의 강노를 비롯한 대형 쇠뇌들은 녹로를 이용해 시위를 당기는 것이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쇠뇌는 녹로를 활용한 쇠뇌라는 뜻에서 ‘녹로노’(사진)라고 부르기도 한다.

궁시장(弓矢匠) 전수 조교 유세현씨는 “녹로는 원래 배의 닻줄이나 기중기의 밧줄을 감아올리는 물레 혹은 활차를 의미한다”며 “녹로를 활용하면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는데 이런 원리를 쇠뇌에 응용해 거대한 쇠뇌를 상대적으로 작은 힘만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노는 길이가 최소 2m 이상인 대형 쇠뇌로 10발의 화살을 동시에 사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성곽 방어용으로 적합한 강노는 기록상 최대 사거리가 1000보(약 1200m)로 알려져 있다.

그보다 조금 작은 중노는 7~8발의 화살을 동시에 사격할 수 있으며 매복할 때 사용하기에 적합한 무기였다. 중노는 300~400보를 날아가 갑옷을 뚫을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갖고 있었다.

3~4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소노는 이동이 상대적으로 간편한 쇠뇌다. 들판에서 진을 치고 싸울 때 사용하던 무기다.

강노·중노·소노 같은 녹로노는 강력한 성능을 갖고 있지만 사격 방법은 조금 복잡하다. 녹로노는 쇠뇌와 녹로가 분리 가능한데 우선 녹로 장치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쇠뇌를 놓는 것이 첫 번째 절차다. 그 다음 병사 한 명이 활시위를 녹로의 갈고리(구현구)에 연결하면 또 다른 병사 두 명이 물레(녹로)를 돌려 시위를 최대한 잡아당긴다. 완전히 시위가 당겨지면 시위를 고리(아두)에 고정해야 사격 준비 절차가 모두 끝난다.

소노의 경우 여러 대의 쇠뇌를 끈으로 연결해 자동으로 사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쇠뇌가 발사되면서 자동적으로 다음번 쇠뇌의 발사 장치를 잡아당겨 연쇄적으로 사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개의 쇠뇌를 연결해 동시에 사격하는 방식을 연노(連弩)라고 부른다. 이론적으로는 한 사람이 수백 개의 쇠뇌를 사격할 수 있다고 해서 천백연노(千百連弩)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난 회에 연재한 수노(手弩)는 실물 유물이 남아 있지만 강노·중노·소노 같은 녹로노는 아직 실제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통 활 장인인 김박영·유영기씨가 복원한 녹로노가 육군박물관·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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